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종교 장소는 종교인들에게 출입 금지 구역이었지만 중국 혁명 지도자들을 모시는 행위만큼은 어떤 사당에서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장타오(江濤) 기자
5월 7일,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핑딩산(平頂山)시 소재 민간 신앙 사당인 삼관묘(三官廟)에서는 동원(東院) 대문이 굳게 잠기고 팬데믹이 지속하는 동안에는 모든 종교 활동을 금지한다는 공지가 나붙어 있었다.
하지만 당일 삼관묘의 서원(西院)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사람들이 주석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군벌 장군 주더(朱德, 1886~1976),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등 중국 혁명 지도자들의 상 앞에서 경배를 올리고 있었다.
삼관묘 관리자는 정부 관리들이 그 어떠한 종교 활동도 하지 못하도록 수시로 순찰한다고 비터 윈터에 전했다. 4월 23일, 순찰을 하던 관리들이 동원에서 홀로 향을 태우던 관리자를 발견하고 구(區) 정부에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곧 촌(村) 관리들이 들이닥쳐 관리자를 꾸짖고는 동원 대문은 항상 폐쇄 상태를 유지하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관리자가 한 번만 더 동원에서 향을 피우다 적발되면 삼관묘 자체를 철거해 버리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허난성 난양(南陽)시 관할 덩저우(鄧州) 현(縣)급시 소재 국영 종교 장소들은 5월 내내 폐쇄된 채였지만 마오쩌둥 천신묘(天神廟)만큼은 숭배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이 팬데믹의 와중에도 천신묘는 폐쇄되지 않은 까닭에 심지어 정부 관리들까지도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합니다.” 천신묘 관리자가 자랑스레 설명했다. “다른 사당들은 모두 폐쇄되었지만 천신묘는 내내 문을 열었습니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폐쇄 공지도 받은 바 없고요.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이곳을 찾아와 향을 피우고 경배를 드립니다.”
교회든 절이든 현지의 모든 종교 장소들은 봉쇄 조치가 발효된 직후 모두 폐쇄되었다. 다시 문을 여는 것은 오직 정부의 공식 통지가 있은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바이러스와 아무 관계가 없는 온갖 구실로 폐쇄가 지속되는 곳들도 상당수였다.
지난 7월, 난양시 관할 신예(新野)현의 어느 불교 사찰에 경찰 일곱 명이 들이닥쳐 주지승에게 국기를 새것으로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자기들이 보기에 색이 바랬다는 것이 이유였다.
“얼마 전, 느닷없이 화재 예방 시스템을 새로 설치하라더니 이번엔 또 국기를 바꾸랍니다. 그냥 사찰이 다시 문을 여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겁니다.” 어느 일반 불자의 하소연이다. “감시 카메라로 향을 피우는 사람이 목격되기라도 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폐쇄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종교 박해에 온갖 방식을 총동원하는 겁니다.”
4월 말, 중국 동부 산둥(山東)성 웨이팡(濰坊) 지(地)급시 관할 칭저우(靑州)시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와 원각사(圓覺寺)에 입장하려던 사람들이 경비원들에게 제지되는 일이 있었다. 그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종교사무국은 모든 종교 활동을 금하고 감시 카메라로 전 사찰을 밀접 감시했다.
하지만 같은 칭저우시에 있는 마오쩌둥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양카이후이(楊開慧, 1901~1930)를 모시는 민간 신앙 사당에서는 사람들이 “산에 붉은 꽃이 피고 우리는 마오 주석의 영도하에 자유를 위한 투쟁에 나서…”라며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팬데믹의 와중에도 종교 장소들의 개조 작업을 멈춘 적이 없다. 중국 북부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 관할의 각 촌(村)에서 4월과 7월 사이에만 스무 채의 도교, 불교 및 민간 신앙 사찰들이 개조되었다. 그런데 허베이성 싱타이(邢臺)시 쥐루(巨鹿)현에 있던 어느 불교 사찰은 마오쩌둥 기념관으로 바뀐 뒤 몰려드는 관리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5월, 쥐루현 정부는 이 사찰 관리자에게 7일 내에 모든 불상을 치우고 마오쩌둥에 관한 출판물을 전시할 것이며 말을 듣지 않으면 사찰을 철거하겠다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그 기간에는 인력까지 배정하여 작업을 관리 감독했다.
일부 불상은 옮기기에 너무 무거워 사찰 관리자가 그냥 놓아두자고 사정했지만 관리들은 불상이 마오쩌둥의 상 옆에 있을 수는 없다며 그를 심하게 나무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