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인민일보는 마오쩌둥 치하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정책 중 하나를 되살려 한층 강화된 선전과 함께 전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요즘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중국 정치 체제의 안전과 안정에 관하여 중요한 기사들을 연재 중이다. 8월 12일 발행된 10번째 기사를 보면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시대를 살면서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인들을 괴롭혔던 유령(펑차오 경험)이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기사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 사회에서 갈등이 사라졌다고 믿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갈등 해소 방법이 바로 펑차오 경험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펑차오의 문자적 의미인 ‘단풍나무 다리’를 이용해 ‘펑차오는 공산당과 인민의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리 이상으로 ‘신(新)중국 풀뿌리 통치의 기념비’라거나 ‘최고의 브랜드’라거나 ‘항상 승리를 불러오는 처방’이라고까지 포장한다.
그렇다면 펑차오 경험이란 무엇이며 중국인들은 왜 펑차오 경험을 두려워하는가? 여기에서의 펑차오는 다리가 아니다. 지난 1960년대에는 저장(浙江)성 주지(諸暨)현의 한 구(區)였으며 현재에는 주지시에 속한 펑차오진의 이름이다. 1963년, 마오쩌둥은 몇몇 역사가들이 문화혁명의 전조라 부르는 사청운동(四淸運動)을 시작했다. 사류분자(四類分子)라고도 하는 ‘반동분자’들을 색출해 숙청함으로써 정치, 경제, 조직, 이념의 네 영역을 정화하는 것이 목적인 운동이었다. 마오쩌둥은 반동분자에 속하는 네 범주에 지주, 부농, ‘반(反)혁명분자’, 그리고 ‘악질분자’를 넣었는데 마지막 두 범주로는 중공에 비판적이거나 불법 종교 활동에 가담하는 모든 사람을 아울렀다.
당시 펑차오에서는 ‘반동분자들’을 경찰이 아니라(좀 더 정확히는 경찰뿐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처리했다. 무슨 말이냐면 열성분자들이 이런 ‘적’들을 ‘소환’하여 인민 ‘비판·투쟁대회(批鬥大會)’를 열고 이 대회를 통해 그들이 자신의 ‘죄’를 시인할 때까지 모욕하고 협박하고 겁을 주는 것이다. 펑차오 주민 13만 명 중 3천 명이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했다. 나중에 문화혁명 때는 일상이 되어버린 끔찍한 마녀 사냥의 전조였던 셈이다.
문화혁명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펑차오 경험은 가끔 세간에 입에 오르기는 했지만 평가절하되었고 잊히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2013년 들어 시진핑(習近平, 1953~)이 그 ‘모범’을 다시 따라야 한다면서 펑차오 경험 50주년 기념식을 치렀고 2015년에는 펑차오 경험을 기리는 기념관이 펑차오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진핑은 그저 기념이나 하자고 저런 말을 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비터 윈터는 어떻게 펑차오식 방법들이 가정교회의 기독교인들을 겨냥하는 공공연한 ‘비판·투쟁대회’를 조직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비롯해 중공이 불법으로 간주하는 종교 단체 신자들을 감시하고 신고하게 하는 데에 사용되는지를 거듭 보도해 왔다. 이번 인민일보의 기사는 이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신호이다.
펑차오 경험의 부활은 한층 새로워진 언론 통제와 해외 선전 역량 강화와 동반된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8월 8일 발행된 인민일보의 여덟 번째 기사에는 ‘공산당이 선전과 언론을 통제해야 함은 마르크스주의적 뉴스 개념의 기본 원칙’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사의 내용을 더 살펴보자. ‘중국은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언론 지형이 변한다 해도 당의 통제라는 철칙은 절대 변할 수 없다. 만약 여론의 도구가 당과 인민의 손에 있지 않으면 그 도구는 당과 인민의 뜻과 이익에 부합하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상상할 수도 없는 해악과 불운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당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언론은 당과 한 몸이어야 하고 당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하며 당과 인민을 대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당 언론은 당과 인민의 통합에 진력해야 하고 당의 뜻과 생각을 전적으로 반영하여 당의 목소리를 더 넓고 더 깊게 퍼뜨려야 한다.’
기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통제는 해외에서도 가능한 한 폭넓은 지역으로 확대하고, 대규모 선전을 통해 ‘여론투쟁의 장에서 감제고지를 장악’하고 ‘적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흥미롭게도 이 며칠 전에 중국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들이 국제 선전 활동에서의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