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WINTER

유럽 “공산주의와 나치즘의 악은 동급”, 그렇다면 공산주의 중국은?

유럽 의회는 20세기에 등장한 두 개의 전체주의 정권의 반인륜범죄가 판박이라고 보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누군가 중국 중앙 정부에게도 이를 알려야 할 때가 되었다.

마르코 레스핀티(Marco Respinti)

유럽 의회(DAVID ILIFF – CC BY-SA 3.0

유럽이 내린 중요한 결의

유럽 의회에서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났다. 9월 19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 의회는 유럽의 미래를 위해 유럽인이 꼭 기억해야 할 것(Importance of European remembrance for the future of Europe)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기구가 공식적으로 국가 사회주의, 즉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윤리 수준에서 동급으로 규정한 것이다. 물론 나치즘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또한 현재 발현하는 온갖 종류의 네오나치즘이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모든 인류는 이제 나치즘과 네오나치즘에 대한 혐오와 저항은 그것이 태동할 때부터 시작해야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나치즘보다는 정도가 덜한 악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공산주의 소련이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맞서 서양 연합군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둘째,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중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에 소련의 지휘를 받는 정권이 들어섰으며 이들이 영리한 선전 선동을 통해 비소련권 세계에 속한 상당수 사람들의 역사적 기억을 어느 정도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악한 공산주의 체제

그러나 공산주의는 나치즘에 못지않은 악랄한 시스템이다. 나치즘이 한 것과 똑같이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괴롭히고 해치고 부당하게 투옥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것이 공산주의인 까닭이다. 민족 전체가 추방되거나 주권 국가가 해체되고 한때 독립국이었던 나라들이 군사적으로 점령당하는 일 등이 비일비재했다. 그 잔혹성에서 소련의 굴라그(Gulag, 소련의 수용소)는 나치의 라거(lager, 나치의 수용소)와 필적했다. 두 이데올로기 모두 시니시즘(냉소주의) 시선으로 전쟁시기와 평화시기를 바라보았다. 점령지를 전체주의적으로 다스린 것도 똑같았으며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도 유대인은 박해받았다. 스탈린(본명은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슈빌리 Iosif Vissarionovič Džugašvili, 1878-1953)의 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Svetlana Alliluyeva, 출생명은 스베틀라나 이오시포브나 스탈리나 Svetlana Iosifovna Stalina, 1926-2011)도 그녀의 1969년 작, 단 1년의 기억(Only One Year: A Memoir)에서 이 점을 인정했다. 미국 작가이자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의 선임 편집자였던 루이스 라포포트(Louis Rapoport, 1942-1991) 역시 그의 저작, 유대인에 대한 스탈린의 전쟁: 의사들의 계획과 소비에트식 해결책(Stalin’s War Against the Jews: The Doctors’ Plot and the Soviet Solution, New York: Free Press, 1990)에서 유대인이 당한 박해를 상세히 기록했고 독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르노 뤼스티제(Arno Lustiger, 1924-2012)도 그의 책, 스탈린과 유대인: 붉은 책(New York: Enigma, 2004)에서 스탈린 시대 러시아에서 유대인이 박해받았음을 확인한 바 있다. 몇몇 학자들도 논점은 서로 다르지만 20세기 유럽 사회주의와 나치즘의 다른 이름인 ‘국가’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의 다른 이름인 ‘국제’ 사회주의 각각에 내포된 두 얼굴 간 지적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한 줌도 안 되는 주변 분파이긴 하지만, 나치즘과 공산주의 사이의 혼종으로 스멀스멀 얼굴을 내밀고 있는 나치-볼셰비키 이데올로기의 존재는 이 점을 분명히 확인해 준다.

그렇다면 과거 나치즘과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악랄한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났던 바로 그 유럽에서 현재 가장 권위 있는 정치 기관(유럽 의회)이 “올해는 … 전례 없이 엄청난 인류의 고통을 야기하고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장차 수십 년에 걸쳐 강제 점령당하는 사태로 이어졌던 2차 세계 대전의 80주년입니다.”라며, 이 두 기괴한 이데올로기를 같은 수준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 의미가 크다.

사실, ‘뉘른베르크(Nürnberg) 전범 재판을 통해 나치 정권의 범죄에 대한 평가와 처벌이 이뤄지긴 했지만 스탈린 정권을 비롯한 여러 독재 정권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시급히 경각심을 일으키고 윤리적 평가를 내리는 한편 법적 조사를 벌일 필요성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모든 정치적 범죄를 기억하며

이러한 이유로 이번 유럽 의회 결의는 사실상 하루가 아닌 이틀의 “역사 기억의 날”을 제정해 역사에 대한 거듭된 각성을 통해 범죄를 “1등급 범죄”와 “2등급 범죄”로 나누던 관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첫 번째는 8월 23일, 유럽 기억의 날로 유럽 연합은 물론이고 나라별로도 전체주의 정권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이다. 이날은 1939년 공산주의 소련과 나치 독일이 맺은 상호 불가침 협정 기념일이어서 특별히 선택된 날짜였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Molotov-Ribbentrop Pact)으로도 알려진 당시 협정의 비밀 의정서를 보면 두 전체주의 정권은 유럽을 비롯한 기타 독립 국가들의 영토를 분할하고 각자 입맛에 맞게 권역화하여 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야기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5월 25일, 폴란드 장교이던 비톨트 필레츠키(Witold Pilecki, 1901-1948) 처형 기념일로 전체주의 정권에 저항한 국제 영웅들을 날로 제정되었다.

위대한 영웅, 필레츠키 대장은 안타깝게도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독교인으로서는 물론이고 인간성에서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에서도 탁월한 사람이었다. 어느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농부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으로 소작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는 나치가 고국 폴란드를 점령하자 순수한 구국의 일념으로 폴란드군에 입대한다. 그 후 폴란드에 세워진 나치의 아우슈비츠(Auschwitz) 강제 수용소에 일반인 포로로 위장해 자발적으로 들어가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그 참상을 내부에서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고 나중에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아우슈비츠 탈출에 성공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아우슈비츠 내부에서 수집한 정보를 런던의 폴란드 합법 망명 정부에 넘겼으나 이를 공유했던 영국 정권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아우슈비츠는 단 한 번도 연합군의 주요 표적에 오르지 못했다. 필레츠키는 폴란드의 반(反)나치 저항군 활동을 이어가면서 아르미아 크라조바(Armia Krajowa, AK), 즉 지하에서 활동하던 폴란드 국내군과 함께 그 유명한 1944년 바르샤바 봉기(폴란드군이 독일에게서 바르샤바를 해방시키기 위해 일으켰던 봉기)에도 참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바르샤바에 입성한 소비에트는 필레츠키를 적으로 간주했다. 그가 오직 폴란드밖에 몰랐고 너무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무엇보다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보 수집 활동을 계속했다. 다만 이번에는 대상이 공산주의 정권의 학정이었다. 그는 소련의 표적이 되었으나 예전처럼 그의 적들을 오랫동안 속이며 따돌렸다. 하지만 1948년 봄, 소비에트는 마침내 필레츠키를 체포했다. 엉터리 재판이 열리고 사형이 선고된 후 필레츠키는 바르샤바의 어느 비밀 감옥에서 목에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둔다. 누구도 필레츠키가 암매장된 장소를 모른다. 바르샤바의 포바즈키(Powazki) 공동묘지 쓰레기 터 인근 어디일 것으로만 짐작될 뿐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현재 나치즘과 공산주의의 두 이데올로기가 모두 악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누가 감히 나치의 철십자 문양이나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망치와 낫 문양을 전시하거나 옷으로 만들어 입거나 깃발로 내걸 수 있을까? 유럽 의회가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모두 비난한 마당에 유럽에서 수정주의적 역사관이 설 자리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중국은? 마오쩌둥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뒤엉켜있다. 중국의 공식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공산주의다. 중국에서 공산주의 상징을 전시하는 것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으며 공산주의자들은 거리낌 없이 스스로 공산주의자라 부르며 철권을 휘두른다. 비터 윈터는 정치를 다루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적 자유와 인권의 수호에 사명을 두고 전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의 모든 악행은 현재 공산주의(유럽 의회에 의해 나치즘과 동급으로 규정)의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다. 소수 민족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종교 단체들을 극렬하게 탄압하고 재판도 없이 사람들을 가두고 괴롭히고 고문하며 수백만 명을 추방하거나 수용소에 구금하고 소수민족 전체에 대한 인종 청소를 시도하면서도 심지어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 전범들이 그랬듯, 살인을 피해자들에 대한 ‘최종적 해결책‘으로 간주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나치와 같은 폭정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면 중국은 그런 공산주의를 어떻게 자랑스러워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