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WINTER

젊은 위구르족 여성, 모친의 석방을 호소해

중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고삐를 조이고 있다. 이는 당국이 이슬람을 근절시키는 것뿐 아니라 위구르 민족 자체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벌이는 것을 임무로 삼고 있다는 두려움을 더욱 키우고 있다.

루스 인그램(Ruth Ingram)

2016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굴바하르 아이티와지(Gulbahar Haitiwaji)가 자신의 딸 굴후마르(Gulhumar)의 결혼식 준비를 돕고 있다

위구르족 어머니들은 보통 딸에게 요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요리를 가르치는 임무는 자녀가 앞으로 결혼해 새 가정을 꾸린 다음 시모에게 배우도록 남겨둔다. 그러나 이제는 프랑스 시민인 굴후마르 아이티와지는 모친의 실종 이후, 결혼한지 이제 2년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현재 두 가정을 위해 요리를 하며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굴후마르의 어머니 52세의 굴바하르가 2016년 11월, 그들의 제2의 조국인 프랑스를 떠나 중국 북서쪽에 위치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방문하던 중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볼일을 보기 위해 잠시 떠난 고국으로의 여행은 가족의 실종과 불길한 예감이 드는 악몽으로 변해버렸고, 그때부터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지난 12월이 되어서야 가족들은 굴바하르의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굴바하르가 ‘반역죄’ 혐의로 사법 외적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 없었다.

굴바하르의 남편 케림(Kerim) 아이티와지는 자신의 집 상태때문에 거듭 사과했다. 비록 모든 것이 꼼꼼하게 제자리에 있을지언정, 아내의 부재로 그는 상실감에 빠져 있어 보였다. 아내가 실종된 이후 그의 삶은 멈춰버렸다. 그는 낮에는 우버(Uber, 승차 공유 서비스) 기사로 일하고, 밤에는 중국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접하며 몇 시간을 보낸다. 그는 “요즘은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아내가 없으니 어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16년 파리에서 굴바하르와 남편 케림의 모습으로, 그녀가 신장 자치구로 떠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27세의 굴후마르는 채소를 잘게 썰어 종류 별로 놓고 볶을 준비를 하면서, 모친의 실종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울함과 분노 사이를 오갔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고향에 있는 친척들에게 영향이 갈까 두려워 해당 사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지만, 굴바하르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이후에는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알리기로 결정했다. “제 어머니는 일반 여성일 뿐이에요. 교육도 받았고 중국어도 할 수 있어요. 중국 국가에 해 끼친 일 한 적도 없고요. 도대체 그들이 왜 제 어머니에게 조국을 배신했다고 말하는 걸까요?” 그녀가 던진 질문이다.

굴후마르는 모친이 했을 법한 방법 그대로 셀러리, 토마토, 마늘, 콩, 피망, 감자 등을 한 입 크기의 마름모꼴로 잘게 썰고, 면 요리를 위해 이미 준비해 둔 생반죽을 금속 접시 위에 돌돌 말아 두었다. 그녀는 아직 수타면의 기술까지는 완벽히 습득하지 못해서 자칭 전문가인 남편에게 맡긴다. 30분이 지나고 이제 준비가 끝났다.

위구르 민족의 국민 요리인 ‘라그만(Laghman)’을 만든 것이다. 위구르족들은 중국에서 수도로부터 3,000 km 이상 떨어져 있는 프랑스보다 2.5배 큰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그리고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과 불편한 상태로 공존하고 있는데 저 멀리 베이징의 통치에 분노를 표출하다 보니 중국 지도자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다.

우리는 케림과 함께 맛있는 볼로네즈를 즐겼다. 케림은 고향인 신장 자치구에서 필수 음식으로 먹었을 원형 빵인 난을 대신하여 프랑스 바게트를 집어 들고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 그는 “우리는 프랑스 사람 다 되었다”라고 말하며 드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15년 전에 난민으로 프랑스에 왔고 굴바하르와 두 딸은 2006년에 따라 들어왔다. 당시 굴후마르는 14세, 동생 굴니가르(Gulnigar)는 8세였다. 이제는 유창한 프랑스어, 중국어, 모국어 위구르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새 조국을 사랑한다. 굴후마르는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고 현재는 고가 주얼리를 판매하는 일을 한다. 여동생은 파리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가족들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왔으며, 현재는 큰 침실 2개 있는 방과 지하 주차장이 겸비된 정부 지원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젓가락을 이용해 라그만을 먹으면서, 유럽 문화 채널인 아르테(Arte)의 방송내용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다. 중국 북서쪽에서 벌어지는 만행에 대한 내용이었다. 추산에 따르면, 1~3백만 명의 위구르족들이 사법 외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한 수용소에서 무기한 재교육을 받는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이 수용소들은 테러리즘, 분리주의, 종교적 극단주의라는 ‘종양을 근절’시키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건립되었다.

굴후마르는 아르테 뉴스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했다

굴후마르는 방금 막 아르테 스튜디오에서 돌아왔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굴후마르는 2016년 11월에 신장 자치구를 방문했다 도착한 지 며칠 만에 경찰에 여권을 강제로 빼앗긴 모친 굴바하르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감정적으로 힘든 10분의 시간을 보냈다. 굴바하르가 잠시 신장 자치구에 돌아간 것은 자신의 연금 문제를 처리하고 병든 노부모를 찾아 뵙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권을 압수당하자 그녀는 자신의 연금과 관련한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굴바하르는 그곳을 떠날 수 없어 어정쩡한 상태로 지냈다. 두 달 뒤 동일한 경찰서로부터 출석을 요구받자 그녀는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권을 돌려받기는커녕 그녀를 맞이한 것은 차가운 얼굴의 무장경찰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연금 서류에 서명하라고 집에 걸려온 옛 직장에서의 전화가 사실은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가까스로 가족에게 소식을 알렸지만 그것은 굴바하르로부터 온 마지막 연락이었다. 2017년 1월 29일,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17년 7월, 가족은 굴바하르가 재교육 수용소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더 큰 고통과 침묵 속에서 가족은 20개월의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작년 크리스마스 때 굴바하르에게 가혹한 형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어떤 재판도, 법적 대변인도, 판결에 대하여 가족에게 보내는 공식 통지문도 그들이 아는 한 없었다. 단지 구두로 전해들은 게 전부다. 이러한 가슴 아픈 소식은 가족 지인이 전화로 알려준 것이었다.

굴후마르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최소한 엄마가 살아있다는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노와 슬픔이 커져갔고, 가족들은 굴바하르가 무죄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불행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알리기로 결심했다. 굴후마르는 “단지 저희들의 어머니이고 주부입니다. 조국을 배신한 적도 없고 테러리스트도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외교적인 압박으로 모친이 석방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신장 자치구에서 벌어진 탄압은 주로 무슬림 위구르족들과 소위 말하는 극단주의 이슬람 사상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어머니의 체포는 매우 어의없는 상황이다.

강경한 경찰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공격한다는 말로 본래의 속셈을 가리고 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종교적 극단주의의 뿌리를 근절시키고 그것이 ‘마치 치유할 수 없는 악성 종양’(공식적인 공산당의 오디오 녹취록에서 등장한 표현이다. 이는 2017년에 SNS인 위챗을 통해 위구르족들에게 전파되었다.)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케림은 “이 모든 것에 있어 아이러니한 것은 제 아내가 심지어 무슬림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그녀는 몇 년 전에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폭력을 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조국 정부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용서해야 하고, 그러한 모욕을 참아내야 합니다. 제 아내가 수감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중국에 전혀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판결을 들은 굴후마르는 모친에 관한 사건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자 재빨리 온라인상에 청원을 올렸다. 지금까지 전 세계 43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에 서명했다. 한 인권 변호사는 해당 사건을 변호해주겠다고 나섰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 사건을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에게 알리는 것이다. 헛된 희망일지 모르나 그러한 노력으로 중국에 일종의 압력을 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에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프랑스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 측면에서 한 가지 주된 문제점이 될만한 것은, 아버지와 두 딸은 이미 프랑스 시민이 되었지만 굴후마르의 모친만은 중국 여권을 결코 포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케림은 “아내는 프랑스 시민권을 신청하기 위한 모든 서류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그러나 노부모가 아직 신장 자치구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갑자기 조국에 방문할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좀 더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해 서두를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라고 말했다.

티베트에서 반대자 진압을 펼친 후 위구르족을 상대로 동일한 일을 수행하도록 2016년 8월에 신장 자치구의 새 지도자로 부임해온 천취안궈(陳全國)로 인해 위구르 민족의 상황이 이토록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라고는 그들은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천취안궈의 철권 통치 하에 고국에서 즉시 발효될 오웰적인(Orwellian) 변화들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천취안궈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주로 무슬림이 대다수인 이 지역의 안보 기온은 미지근한 온도에서 격정적인 온도로 변화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모친이 직면할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굴바하르 아이티와지의 사연은 드문 사연이 아니다. 이들 가족이 그녀의 석방을 위하여 세간의 이목을 끄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파리에만 이러한 비극을 겪고 있는 위구르족들이 수천 명에 달한다. 그들은 해외에 잠시 체류한 것 때문에 고국에 돌아간 순간 부지불식간에 재교육 대상이 되거나 혹은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케림의 추산에 따르면,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는 위구르인 중에 5~6백 명이 이미 난민 지위를 획득했고 3천명의 학생은 발 묶인 상태다. 이들은 고국의 가족들이 고통을 겪게 될까 두려워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며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만으로도 질겁한다. 중국에서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새 법규 때문에, 이들의 수입원은 말라가고 있다. 그들 모두는 계획되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응시하고 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자들(대부분 난민들)은 세계위구르회의(World Uyghur Congress)의 프랑스 지점을 형성했다. 그들 모두는 예외 없이 조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분노하고 있다. 모두들 실종된 친지나 친구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고향의 사랑하는 이들과 연락이 끊긴 상태다. 해외로 연락하다 사랑하는 이가 위험에 빠지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2015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찍은 굴바하르와 그녀의 두 딸 굴니가르(중앙), 굴후마르(오른쪽)의 사진

한편 케림과 그의 두 딸은 굴바하르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굴바하르의 친척 언니가 SNS 위챗을 통해 자신이 혹은 모친이 한 달에 한 번씩 굴바하르를 면회 간다며 한두 마디 안심의 말을 전해오기는 하지만, 굴후마르는 그것이 사실일 거라는 확신이 없다. 굴후마르는 “이모는 저에게 엄마가 고기도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주셨어요. 그러나 그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고, 보통 건강 악화로 석방된 이들이 수용소 생활에 대해 전하는 말들과는 전혀 다르죠. 이모는 태연한 척해야 할 상황이라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굴후마르는 “신장 자치구의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가 목숨을 지켜내야만 해요. 엄마에게 진정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라고 하며 모친이 살아는 있는지 걱정도 하고, “엄마는 고혈압이 있으시고, 2년 전 가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후에는 매일같이 약을 드셔야 해요. 약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수용소들에서 의료 관리가 거의, 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설명하며 모친의 건강 역시 걱정된다고 말했다.

모친의 행방에 대한 소식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굴후마르는 그녀가 받는 국제적인 지지와 자신이 낸 청원의 서명인들(그 수가 매일 증가하고 있다)로부터 힘을 얻는다. 그들은 마크롱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이 중국으로부터 소식을 알아올지 모른다는 희박한 기회에 매달리고 있다. 이번 주만해도, 파리 주재 중국 영사와 연락을 주고받는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굴바하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사건을 국제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중국 당국이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그녀의 사건을 재검토할지도 모를 일이다. 케림은 “공무원들에 따르면, 그녀가 2년간 억류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제기된 고발 사건을 경찰이 여전히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잠정적으로는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가족들은 굴바하르가 프랑스 영토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한숨을 놓을 수가 없다. 굴후마르는 언젠가 곧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모친이 맛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녀는 “엄마에게 라그만을 만들어 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다시금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식사할 수 있게 되겠죠”라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아이티와지 가족이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