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WINTER

신장 교육반: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위구르인들을 ‘개조’하려다 실패했는가

위구르인 학생들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 학교로 보내 그들을 ‘중국화’하려는 베이징의 정책을 살펴보는 내용의 책이 티모시 그로즈(Timothy Grose)에 의해 출간되었다.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중국 문제 해결에 빠질 수 없는 문제: 신장 교육반과 위구르인의 정체성(Negotiating Inseparability in China: The Xinjiang Class and the Dynamics of Uyghur Identity)’

‘민족 개조’가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한족이 아닌 사람들은 ‘중국화’되어야 하고 ‘소수 민족’의 일원이라는 신분을 받아들여 한족을 ‘큰형’이자 모범으로 보는 동시에 중공이 그들에게 부여한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인들은 중국어 사용이 강제되고 이슬람의 종교 전통이 말살되는 것에 지속적으로 저항해 왔다. 그러자 중공은 수백만 명의 위구르인을 저 끔찍한 재교육 수용소에 보내는 등 박해의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했으나 사실 장기적으로 바라는 바는 교육을 통해 차세대 위구르인들을 ‘중국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인디애나주 테레호테(Terre Haute)시에 위치한 로즈-헐먼 공과대학(Rose-Hulman Institute of Technology)의 티모시 A 그로스(Timothy A. Grose) 교수는 홍콩대학 출판사(Hong Kong University Press)를 통해 ‘중국 문제 해결에 빠질 수 없는 문제: 신장 교육반과 위구르인의 정체성(Negotiating Inseparability in China: The Xinjiang Class and the Dynamics of Uyghur Identity)’를 출간했다. 책에는 티베트 교육반을 따라 하는 신장 교육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티베트에서는 매년 각각 1천6백여 명과 3천여 명의 학생들을 티베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기숙 중학교와 기숙 고등학교에 보내는데 이는 티베트 전체 중고교생의 20%에 육박한다.

1999년,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위구르인 학생들에게도 도입되었으며, 이는 ‘국가 안보’ 문제로 여겨졌다. 2000년, 중공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두 건의 핵심 문서 초안을 발행한다. 교육부에서 나온 ‘신장 교육반 실무 회의 요약’과 ‘신장 교육반 관리법 (시험안)’이 그것이다. 문서에는 신장 교육반의 목표가 다음과 같이 분명히 기술되어 있다. ‘중공의 지도자들을 지지하고 중국과 사회주의를 사랑하며 하나의 중국 정책을 옹호하는 일단의 위구르인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양성이란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중공 지도자들의 노작을 가르침으로써 ‘중공에 대한 젊은이들의 지지를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그로스의 지적대로 “중공의 의도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기숙 학교를 세운 목적은 외부와 고립된 공간에서 학생들에게 당 강령을 주입하려는 것이었다. 중공 관리와 학교 행정 당국에 우선하는 것은 정치적 세뇌이지 교육 목표 달성이 아니다.”

신장 교육반은 최신식 광고 캠페인을 통해 홍보되고 있다. 수업료의 대부분을 중공이 부담하고 기숙 학교 졸업생은 취업 시장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에서 공부한 학생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선다는 것이다. 신장 교육반은 가능한 인원보다 지원자가 더 많다. 그래서 2015년, 중공은 매년 정원 한도를 9천880명으로 제한했다.

합격한 학생들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가능한 한 먼 연안의 도시들로 보내지며 고향에는 1년에 한 번만 갈 수 있고 부모의 방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모든 수업은 중국어로만 이뤄진다. 학생 상벌을 관리하는 포인트 제도가 있어서 일부 특별히 허가된 위구르어 ‘사용 시간’ 외에 위구르어를 사용하다 걸리면 포인트가 차감된다. 학생들에게는 ‘중국식’ 이름이 부여되며 입소 즉시 개인 기도를 포함해 모든 종교 활동에 대한 금지 통지도 받는다.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자기 방에서 혼자 기도하다 발각되면 기숙사 전체가 처벌을 받는다. 유일하게 허락되는 것이 식당에서 제공되는 할랄 음식인데, 그로스의 주장에 따르면 비(非)할랄 음식이 은밀히 할랄 음식으로 둔갑해 제공되는 때가 적지 않다.

위구르인 학생들은 무슬림 명절이 아니라 중국 명절을 지내야 한다. 이를테면 위구르 문화에는 없는 청명절(淸明節, 춘분 15일 뒤로 춘절, 단오, 중추절, 국경절과 함께 중국 5대 명절의 하나)을 쇨 때면 학생들은 ‘열사능’을 참배하고 국공 내전 당시 중공 측 희생자들의 무덤을 청소해야 한다. 그로스에 따르면 그렇게 함으로써 첫째, “학생들은 중공 없이는 ‘신중국’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둘째, 학생들이 무덤 주위의 쓰레기를 쓸 때 그 동작 자체가 ‘(학생들 자신의) 낙후성을 쓸어내는’ 상징이 된다.”

중공의 목적은 엘리트 위구르 학생들을 ‘개조’시켜 공산당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로 만들어 장차 그들이 신장으로 돌아갔을 때 그 지역의 ‘중국화’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문제가 하나 있다.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로스는 신장 교육반에 참여한 학생들 전원이 그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학생들은 신장 교육반에서 제공하는 교육과 기회를 감사히 여기며 신장으로 돌아간 뒤 관료나 경찰관으로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은 소수다. 그로스의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 대부분은 기숙 학교를 ‘감옥과 같다’고 묘사한다. 강제 교육의 반작용으로 이런 학생들의 민족 정서, 종교 정서는 오히려 강해진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청소년 남녀의 공통적인 특징은 반항성이다. 일부 여학생들은 신장 교육반에 참여한 뒤 베일 착용을 시작하기도 한다. 기도에 눈뜨는 학생도 있고 베이징에서는 사우디 대사관에 찾아가 중공의 주석이 달리지 않은 코란을 구하는 학생들도 있다. 한족 학생들과 친해지는 사례는 거의 없고 대다수는 다른 나라에서 온 무슬림 학생들과 친해지며, 그중 일부는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이들도 보통 후이(回)족은 꺼리는데 그들은 무슬림이지만 중국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것이 2002년 월드컵 때 터키가 중국을 이기자 신장 교육반의 위구르인 학생들이 터키를 열렬히 응원하며 승리를 축하한 사건이다.

많은 신장 교육반 졸업생들이 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지역에 머물면서 할 수만 있다면 대학에 진학한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학생들이 두 번 다시 신장으로는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신장의 위구르인 거주민들보다 다른 (省)의 거주민들이 여권을 발급받기 쉽다는 점을 이용해 터키,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해외로 나가기도 하며, 그곳에서 ‘열렬한 위구르 인권 운동 지지자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 주요 이유의 하나로 종교 자유의 부재를 언급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2015년, 중공 관영 언론이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테러리스트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23세의 투르쑨(Tursun)이라는 위구르인 남성과의 인터뷰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중국으로 돌아온 즉시 체포된 그는 당시 반성하며 중공을 찬양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투르쑨이 신장 교육반 졸업생이라는 사실이다. 감옥에서 그가 했던 고백은 선전으로 기획된 것이지만 의도치 않게 시청자들에게는 신장 교육반 프로젝트가 폭삭 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