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WINTER

‘정육처럼 매달아두기’: 소수민족 카자흐족인이 겪은 고문의 기억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의 한 소수민족 카자흐족인이 박해, 치욕, 고문에 대한 내용의 서신을 비터 윈터에 보내왔다.

카자흐스탄과 접한 국경의 중국인 수비대 (출처: RIA Novosti archive, image #482282 / Yuriy Kuydin / CC-BY-SA 3.0 )

‘아산(Asan)’

[편집자의 말]: 이 서신은 최근 신장 자치구의 감옥에서 출소했다는 한 카자흐족인이 비터 윈터에 보내온 것이다. 본문은 서신 내용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여 본지에 실은 것이다. 저자의 신변 보호를 위하여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했으며, 서신 내용은 미미한 수준으로 축약 및 편집되었다. 서신의 구체적인 내용이 우리가 수집해온 재교육 수용소의 여러 이야기들과 유사하여 우리는 이 서신을 전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본다. 해당 서신을 우리에게 전달한 채널이 실제 소수민족 카자흐족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을 조사를 통해 알게 되어 더욱 확신이 간다.

제 이름은 ‘아산(Asan)’입니다. 저는 종종 ‘수용소’라 불리는 감옥에서 최근에 출소했으며, 아직까지 신장 자치구에서 지냅니다. 그들(중국 공산당)의 일반적인 관행에 비추어 보면, 저는 다시금 감옥에 가게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감옥에서의 경험을 모두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저를 체포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국제 사회가 제가 목격한 것들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쓴 기록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제가 살아남는다면 제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기꺼이 증언할 것입니다.

교통 위반으로 수감돼

저는 교통 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교통경찰대로 연행되었습니다. 교통경찰대에 도착하니 그들은 제게 위반 기록이 여러 건 더 있다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는 저를 어딘가로 데려갔어요. 그들은 저를 철제 의자에 묶어둔 채 심문했어요. “너의 범죄 기록을 확인했다. 숨기고 있는 것을 자백하라. 자백하면 너는 관대한 처우를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혹한 처우를 받게 될 것이다.” 제가 그들에게 실제 아무런 법규도 위반한 적이 없다고 말하자 그들은 전기봉으로 저를 구타해 의식을 잃게 만들었어요.

깨어나보니 제 머리에 검은 두건이 씌어 있더군요. 차를 타고 있었고,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몇 명 앉아 있었어요. 우리는 감옥으로 이송 중이었고, 손과 발에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등 뒤로 수갑을 차고 있었어요. 한 사람 당 경찰 한 명씩 붙어 있었고요. 그들은 우리를 교도관들에게 넘겼습니다.

가혹한 수감 환경

감옥 안에서 우리는 검사를 받기 위해 옷을 모두 벗어야 했어요. 교도관들이 죄수복을 입으라고 줬고, 이후 저는 56명이 감금된 감방으로 보내졌어요. 저를 포함해 그곳의 모든 죄수들이 경범죄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감방 중앙에는 소형 목재 벤치들이 두 열로 놓여 있었어요. 낮에는 모두들 목재 벤치에 앉아 있고 밤에는 힘이 센 자가 벤치에서 자게 됐고, 약하고 아픈 자들이 바닥에서 잤어요.

각 감방에는 양동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변용, 하나는 대변용이죠. 아침이 되면 강자들이 가장 먼저 볼일을 보고, 이후 약자들이 마지막에 볼일을 봐요. 마지막 몇 명이 볼일을 볼 때면, 이미 양동이에 배설물이 가득해 몸에 배설물이 묻기도 했어요. 이 때문에 염증이 생긴 사람들도 있고요.

감옥에서 식사로 찐빵과 찬 수돗물을 먹어요.

지성인들도 수감돼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소리로 말해요. 조용히 얘기를 나누면서 감옥 내 사람들이 교수, 통번역가, TV 진행자, 사업가, 공무원, 역사가, 지역 크리스천, 샤머니즘 신자, 무신론자, 중공 당원 등 각계각층에서 온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이곳에 있는 유일한 이유는 소수민족(위구르족, 카자흐스탄)이라는 정체성 때문이에요.

수감되어 있는 동안 교도관들은 우리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나 감방 문에 달린 작은 창문을 통해 반대쪽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볼 수 있었어요. 포스터에는 70~80대의 노인 남성과 20~30대의 청년이 손에 작은 붉은 국기를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어요. 포스터의 아래 쪽에는 ‘우수 학생들’과 ‘학습 센터의 엘리트’란 말이 적혀 있어요. 교도관들은 우리에게 공산당 찬가와 시진핑을 칭송하는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노래를 잘 암송하면, 감옥에서 풀어줄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고문의 공포: ‘신선한 고기처럼 매달아두기’

감옥 시스템은 끔찍해요. 마약, 뇌물 등의 범죄로 입소한 한족 죄수들은 종종 카자흐족 죄수들과 시비가 붙어요. 어떤 한족 죄수는 “이 모든 게 당신들이 반항해서야. 그 때문에 우리도 피해를 본다고. 당신들 때문에 우리도 갇혔잖아”라고 말했어요. 대부분의 경우, 교도관들은 한족 죄수가 카자흐족 죄수를 때려도 내버려둡니다. 만약 카자흐족 죄수가 한족 죄수를 때리면, 교도관들은 카자흐족 죄수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구타했습니다.

감옥에는 고문실도 있어요. 그 안에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걸어둘 때 쓰는 쇠 갈고리들이 일렬로 있어요. 그들은 우리를 수갑을 찬 채로 작은 의자에 서게 한 다음 수갑 사이에 쇠 갈고리를 걸어요. 그런 다음 의자를 치워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신선한 고기마냥 매달려 있게 돼요. 그들은 일렬로 매달린 ‘신선한 고기’들을 나무 몽둥이로 패댑니다. 마치 이불을 걸어두고 후려치는 것처럼요. 당시 저는 기절할 때까지 얻어맞았어요. 깨어나보니 다시 제 감방이더군요.

감옥 안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이 ‘최상’이었어요. 우리가 저지른 ‘범죄’는 ‘경범죄’이니까요. 이맘과 종교 관련자들은 우리 밑에 층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밑에 층에는 감방 각각에 20~30명 정도가 수감되어 있어서 사람이 많지 않았고, 이맘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문실이 있어요. 고문실 중앙에 이맘이 앉는 작은 의자가 있고 한족 죄수 네 명이 각각 네 모퉁이에 앉아 있어요. 이맘은 손을 무릎에 두고 머리를 들어 천장을 보고 있어야 해요. 정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고요. 네 명의 한족 죄수들이 이맘을 지켜보고 감시합니다. 이맘이 목이 뻐근해 움직인다든지, 몸이 조금이라도 기운다든지, 입을 약간이라도 움찔거린다든지(이 경우 그가 조용히 경전을 외는 것으로 간주됨) 하면 한족 죄수들이 이맘을 혼내줘요. 이러한 임무를 잘 수행한 한족 죄수들은 감형받을 수 있다 보니 그들은 종교인들을 괴롭히는 데 아주 적극적이었어요.

‘숫양과 암양의 짝짓기 방’

감옥에는 교도관들이 ‘숫양과 암양의 짝짓기 방’이라고 칭하는 방이 하나 있어요. 반년에 한 번씩, 수감자 아내들(체포되지 않은 자들)이 이 방으로 면회를 와 남편과 ’결합’을 해요. 그러나 방에는 감시 카메라들이 설치되어 있어요. 교도관들이 감시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부부가 나오면 그들을 조롱해요. 제가 그곳에 있는 동안, 몇몇 카자흐족 여성들이 이러한 모욕적인 환경 속에서 남편과’결합’했어요.

구타로 사망해

한 65세의 카자흐족 남성이 구타로 사망했습니다. 사망 후 30분도 채 되지 않아 그가 ‘고혈압으로 사망’했다는 검시 조서가 나왔어요. 이는 그러한 상황들이 일상적인 업무의 일환임을 보여주죠. 이후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보내요. 시신에는 구타로 인한 멍 자국이 있었고, 흉골이 안쪽으로 내려앉아 있었어요. 시신을 본 가족은 혹시나 교도관들에게 불리한 항변을 했다가 자신들도 수감될까 봐 극심한 두려움에 떨며 조용히 시신을 거둬가요.

출소 후에도 공포 속에서 지내

감옥에서 출소 후, 저를 본 지인들은 재빨리 달아나더군요. 그들은 저에게 말을 걸다 자신들도 갇히게 될까 봐 두려워했어요.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죠. 그들은 언제, 어떤 이유로 체포될 지 알지 못하지만 언제고 조만간 감옥에 갇히게 될 것임을 알고 있어요.

저처럼 ‘경범죄’를 저질렀다 출소된 자들이 제가 사는 지역에만 만 명이 넘어요. 중국 정부에 따르면, 우리는 ‘국어(중국어)에 유창’하게 된 ‘학습 센터의 우수 학생들’이라더군요. 그렇지만 이 지역을 떠나는 것은 불허되고 있어요. 한 국제 단체가 조사를 위해 온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 때문에 당국이 우리를 풀어준 것 같아요. 국제 단체가 조사를 마치면 현재 감옥 아래에 지하 감옥들을 지어 만 명이 넘는 우리들을 다시금 지하 감옥에 가둘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몇몇 지하 감옥들은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지인들 중에는 이미 미쳐버린 자들도 있어요.

어쩌면 저는 이러한 정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할 거에요. 그러나 저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이 정보를 국제 사회에 전달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저는 정보와 관련해 기꺼이 증언을 할 겁니다.

제가 감금되었던 감옥은 결코 학습 센터가 아니며, 그곳은 지역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체주의 강제 수용소예요. 국제 단체들이 조사를 위해 어서 방문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전체주의 강제 수용소들이 서둘러 폐쇄되지 않으면 위구르족과 카자흐족 소수민족들은 집단 학살을 당하게 될 겁니다.

‘아산’은 우리에게 서신을 보낸 카자흐족 사람으로, 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붙인 가명이다. 소수민족 카자흐족들이 운영하는 단체를 통해 아산의 서신이 우리에게 전달됐으며, 우리는 이 단체의 정체를 신뢰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