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WINTER

국기 게양, 소림사를 비롯한 모든 사찰의 재개 요건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조치가 해제되었음에도 각 종교 예배소는 문을 열려면 중국 공산당을 향한 충성심을 증명해야 한다. 국기 게양식이 기본임은 물론이다.

한성 (韓生) 기자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종교 예배소가 다섯 달 넘게 문을 열지 못했다. 불교의 성지답게 ‘천하제일사찰’이라는 명성과 더불어 세계적인 무술 학교로도 널리 알려진 중국 중부 허난(河南)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봉쇄 조치가 완화되면서 6월 22일, 다시 문을 열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지만 재개장 당일 대대적인 국기 게양식을 통해 애국심 홍보와 더불어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중국에 있는 종교 예배소로서는 봉쇄 해제 이후 종교 활동을 계속하려면 수용해야만 하는 요구였다.

국기 게양식에서 열을 지어 서 있는 소림사(少林寺) 승려들의 모습

당일 오전 9시, 소림사의 스융신(釋永信, 1965~) 주지승이 1백여 명의 승려들과 함께 빗속에서 국기 게양식을 거행했다. 중국에서 불교를 전파한 지 1천5백 년이나 된 소림사조차 중공의 ‘중국화’ 정책에 굴복해 원래의 가치와 책임을 점차 잃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적인 불교 복장을 한 승려들이 군인처럼 국기 게양식에 참석한 모습이란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6월 22일, 재개장식 날 소림사를 찾은 어느 방문객의 말이다.

“국가의 통제가 하도 극심해서 종교인들은 당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신앙인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거죠.” 또 다른 방문객이 한 말이다.

영상: 국기를 들고 행진 연습을 하는 소림사 승려들의 모습이 군대의 제식을 연상시킨다.

봉쇄 조치 해제 이후 재개장을 원하는 종교 예배소들이 ‘애국심’을 증명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더라도 ‘전염병 예방’을 이유로 종교 활동은 여전히 금지되거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중공에 따르면 애국심을 고취하는 행사에서는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 남동부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 지(地)급시에 있는 유명한 남태암사(南台岩寺)도 6월 21일, 국기 게양식을 거행한다는 조건으로 재개장을 허락받았다. 남태암사의 어느 직원은 정부가 종교에 간섭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남태암사에서도 승려 회의를 비롯한 각종 종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는 매주 국기 게양식을 거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태암사로서는 명령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다. 7월 2일에 열린 소규모 승려 회의에서도 주지가 30여 명의 불자들을 이끌고 국기 게양식을 거행했다.

영상: 7월 2일, 남태암사(南台岩寺)에서 승려 회의 전에 열린 국기 게양식

취안저우시 종교사무국은 날씨에 상관없이 중국 국기를 일주일 내내 걸라는 명령을 현지 종교 예배소들에 하달하기도 했다. 월요일에 게양했다가 금요일에 내리라는 것이었다. 바래거나 손상된 곳 없이 항상 새것처럼 최고의 상태로 국기를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기 게양식 이후에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시진핑(習近平, 1953~)이 거둔 성과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는 ‘남태암사’ 주지

6월 30일, 중공 설립 99주년 기념식 전야 때도 중국 동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 통일전선공작부(UFWD, 이하 통전부)는 잠산사(湛山寺) 승려들을 소집해 중공의 역사를 다룬 영화, ‘건당위업(建黨偉業)’을 관람하게 했다. “불교 홍보를 비롯해 사찰에서 거행하던 종교 행사는 대부분 여전히 금지입니다.” 어느 잠산사 승려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승려들은 전통적으로 아침과 저녁에 모여서 하던 불경 암송도 할 수 없다.

6월 말, 산둥성 랴오청(聊城)시의 일부 관영 모스크 이맘들에게도 7월 1일 ‘중공 설립일을 기념’할 것이며 당일에는 무슬림 신자들을 모아 국기 게양식을 거행하라는 통전부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원래 종교인들이 모이는 것 자체는 전부 금지 대상임에도 말이다.

“랴오청시 관할 린칭(臨清)시에서는 모스크든 교회든 사찰이든 모두 국기 게양식을 해야 했습니다. 1백 명이 넘게 모인 경우도 있었지요. 이것은 모임이 아니랍니까?” 어느 현지 무슬림이 정부 규제의 이면에 숨겨진 원인에 물음표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