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WINTER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실종 위구르인: 함둘라 일가의 불행

실종 위구르인들이 이미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중국 공산당의 선전은 잘 나가던 위구르인 사업가 두 사람과 그 가족의 사례로 거짓임이 폭로되었다.

루스 인그램(Ruth Ingram)

자신의 이스탄불 영업점 앞에 선 오메르잔 함둘라

끝없이 쏟아지는 중공발 거짓 뉴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의 타깃은 누구인가? 돈이 많든 가난하든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교육을 많이 받았든 일자무식이든 상관없다. 이유 따위는 필요치 않다. 중공은 계급, 종파 구분 없이 위구르인이라면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도 저인망으로 물고기 훑듯 잡아들여 재판도 없이 형을 선고한다.

중국의 박해를 피해 세계 전역으로 몸을 피한 위구르인 난민들로부터 고국에 있는 친지들의 소식을 알려달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베이징 당국의 지원을 받는 관영 언론, 중국국제텔레비전(이하 CGTN)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인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거짓말’의 실체를 폭로하겠다며 이번 주부터 여론전에 나섰다. CGTN은 해외에서 친지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위구르인들이 ‘StillNoInfo(아직 소식 전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찾고 있는 사람들을 ‘찾았으며’, ‘실종’된 것으로 보도되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면서 그간 중국의 이름에 먹칠을 한 소위 가짜 뉴스들을 비난하는 일련의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는 함둘라 형제의 사례가 증명하듯 거짓말이다. 함둘라 형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위구르인 거주 지역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부동산업자에 속한다. 그러나 43세로 형인 로지 하지(Rozi Haji)와 37세의 동생 메메트(Memet) 두 사람 모두 다른 위구르인들처럼 사라진 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위구르 해외 난민 사회에도 두 사람이 초법적인 비공개 재판을 통해 가혹한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맏형인 로지 하지 함둘라가 밝혀지지조차 않은 ‘범죄’로 25년 형을, 동생인 메메트가 15년 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외 도피 중인 남은 마지막 형제는 필요하다면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서라도 끝까지 두 사람의 석방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체포되어 사라지기 전, 로지 하지 함둘라의 마지막 모습
행복한 한때를 보내던 메메트의 모습

박살 난 가정

올해 30세인 오메르잔 함둘라(Omerjan Hamdullah)는 삼 형제 중 막내이자 가족 중에서 신장 자치구를 탈출한 유일한 사람이다. 형들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그는 형들을 위해 변호하기로 다짐했다.

신장 로지 하지 유한회사와 쿠얼러 칠란박흐(Korla Chilanbagh) 부동산 유한회사는 자산가치가 1억4천만 달러(약 1천640억 원)가 넘어서 신장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공적인 사업체에 속한다. 이 두 회사의 공동 사주이던 두 형제는 각각 2017년 10월과 12월에 쿠얼러(庫爾勒)시에서 체포되었고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의 최근 소식을 알게 된 것도 어느 과거 한족 동료가 조심스럽게나마 알려준 덕이다. 비공개 재판 소식은 있었지만 그들이 무슨 ‘범행’을 저질렀으며 현재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도 나온 바가 없다.

오메르잔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셈이다. 나는 수많은 위구르인들이 난민으로 뿌리를 내린 터키 이스탄불 세파코이(Sepakoy)에서 그가 최근 개점한 작은 위구르어 서점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2년이 넘도록 신장으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며 부유한 위구르인 사업가들이 체포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던 2017년 가을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만 해도 그는 학생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고 있었고 아들을 보러 사우디에 왔다가 사망한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가족들도 모두가 사우디를 방문한 터였다. “가족들은 장례를 마치고 쿠얼러로 돌아갔어요. 그리고는 별안간 형들이 몇 달 간격으로 사라진 겁니다. 어디로, 왜 끌려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는 형들이 소위 말하는 재교육을 받고 나서 풀려났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걸어 보지만 이제는 형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쩔 줄 모른다.

오메르잔이 학생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간 것은 2013년이었지만 박해가 심해지면서 2017년 터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우디에 있던 사람들이 작은 꼬투리만으로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체포되곤 했던 것을 감안할 때 곧 자신의 여권이 만료되면 중국으로 돌아가 갱신받을 가능성이 없음을 알았다. 터키에서 그와 합류한 그의 아내도 그때쯤 쿠얼러 대 모스크 이맘이던 그녀의 아버지가 15년 형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오메르잔은 어머니는 물론이고 대가족이 모두 있는 쿠얼러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새 출발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형들이 겪어야 했던 불의에 당혹스러웠고 화도 났다. “제일 어이없는 일은 형들이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음에도 지역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거금을 들여 빈곤 구제 사업과 교육 사업을 벌였던 맏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바인궈렁(巴音郭楞) 몽골 자치주, 쿠얼러시 인근의 샤쿠르(Shaqur)촌에서 과수원을 열고 배를 파는 등 보잘것없는 시작이었지만 맏형은 곧 몇 개의 위구르식 고급 식당을 소유하게 되더니 결국에는 동생과 함께 부동산업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중공은 형들의 돈이 탐났던 겁니다.”

중공이 강탈한 함둘라 부동산 중의 하나인 쿠얼러 시내의 칠란박흐 복합 센터 건물

오메르잔은 이웃에 헌신적이었고 중국을 위해서도 거대한 부를 일군 두 명의 교양 있고 성공적인 사업가가 왜 이런 박해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중공이 형들의 재산을 노린 것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재판도 없었어요. 형들은 그냥 사라졌고 형량도 어찌해서 새어 나와 알았던 겁니다.”

이번 주, 오메르잔은 중국 정부를 향해 가족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렸다. “형들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위구르인이라는 것과 사업을 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재산은 열심히 살아서 얻은 성과입니다.” 그가 침통하게 말했다.

오메르잔이 마지막으로 60세 어머니와 연락이 닿은 것도 벌써 2년 전이다. 어머니는 몸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누가 어머니를 보살피는지조차 모른다. 형들의 아내와 네 아이들, 누이인 제이니굴(Zeynigul)과 하바굴(Havagul) 함둘라와 두 누이의 아이들을 비롯해 다른 가족들 역시 터키로부터 온 소식을 접했다가는 그들의 안위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될까 봐 외부와 접촉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위구인들에게 터키는 정부가 정한 여행 금지국이니 말이다. 반대로 가족으로부터도 소식이 없는 까닭에 오메르잔은 가족들마저 수용소에 갇혔거나 최악의 경우 이미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가 말했다.

쿠얼러에 있을 당시 어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은 오메르잔

그는 베이징을 향해 가족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알려 주세요.” 그가 말했다. “형들이 왜 변호사도 없이 비공개 재판을 통해 형을 선고받았는지도 말해 주세요. 형들이 무슨 잘못을 했으며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요!” 그가 보기에 중공이 신장에는 아무 일도 없다면서 떠들어대는 것은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짓이다. “우리는 모두 진실을 압니다. 신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압니다.” 그가 말했다. “중공은 사람들더러 신장에 직접 와서 확인하라지만 그래 봐야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은 정부에서 조작한 쇼에 불과합니다.” 오메르잔은 중공의 홍보 부처 자체가 ‘가짜 뉴스’ 생산지라고 말했다.

자유세계를 향한 호소

비록 고향에서는 부유했지만 현재 오메르잔은 중국 정부에 모든 것을 빼앗긴 다른 위구르인 난민들처럼 무일푼에서 새로 시작하고 있다. 함둘라 가정이 소유했던 거대한 제국, 즉 열 채의 빌딩, 위구르식으로 실내 장식을 한 몇 개의 레스토랑, 그리고 그 밖의 온갖 부동산들이 깡그리 중국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금융 자산도 전액 동결되었다. 그는 현재 절약하여 모은 돈에 대출한 돈을 더하여 문을 연 작은 서점에서 위구르 책을 인쇄해서 팔거나 스컬캡(성직자 등이 쓰는 테두리 없는 베레모)을 비롯한 각종 위구르 기념품을 팔기도 한다. “다른 위구르인 동포들처럼 이곳에서는 우리도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과거에 어땠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죠. 살아남아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까요.”

그는 형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함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까지도 갈 작정이다. “중국에 정의란 없습니다. 무법천지예요.” 그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중국 밖 세계에서는 정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메르잔이 중공에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그저 어머니와 형들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그는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줄 수 있고 두 형들이 제대로 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호소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 호소합니다. 중국 정부를 향해 제 가족을 석방하고 제가 정상적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게 하라고 외쳐 주세요.”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