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WINTER

어느 경관구에서 사라진 1천8백 개의 종교 조각상

아라한산 경관구는 개인들이 유교와 불교, 도교의 삼교를 모두 기리기 위해 기금을 모아 건설한 것이지만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하지 못했다.

예 링 (葉玲) 기자

중국 남동부 푸젠(福建) 샤먼(廈門)시 관할 퉁안(同安)구 련화(蓮花)진에 위치한 아라한(혹은 뤄한)산 경관구는 대규모 문화 관광지이다. 2009년에 건설되었는데 건축을 시작하고 기금의 대부분을 댄 사람은 중국인 서예가이자 기업가인 린즈량(林志良)이다. 건설 기금은 자선 사업을 통해서도 마련되었는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기부했다.

공사비로 1억 위안(약 165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된 이 경관구는 중국의 삼교, 즉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의 가르침을 모두 아우르는 곳으로 부처상, 보살상, 아라한상을 비롯하여 1천 개가 넘는 조각상들이 모셔졌다. 5백 개가 넘는 아라한상으로 이뤄진 정글, 관음각, 아라한탑, 관제묘(關帝廟) 등 30개 이상의 볼거리도 경관구 내에 마련되었다.

경관구 내 아라한상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카무플라주 천으로 덮이기 전후 모습

5월, 정부는 조각상들이 ‘비인가’인 데다 한 곳에 10개 이상의 종교 상징물이 있으면 안 되므로 경관구에서 모든 조각상들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보살상 일부가 실내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가려졌다.

정부의 압력을 받은 경관구 책임자는 별수 없이 5백 개의 아라한상들을 카무플라주 천으로 가리고 나머지는 건물로 옮겼다. 그 사이, 부처상들도 가려지거나 파괴되었다. 이렇게 조각상들을 처리하는 데에만 40만 위안(약 6천6백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

부처상들이 카무플라주 천으로 가려진 모습

종교적 내용을 담은 간판들도 수정되었다. ‘아라한산’이라 쓰였던 중국어 글자들은 ‘연꽃 서원’으로 바뀌었고 ‘지장사(地藏寺)’는 ‘공자 학당’으로 대체되었으며 재신전(財神殿), 즉 부의 신에게 바쳐졌던 사당의 이름도 중국의 철학자이자 이학(理學)의 창시자인 주희(朱熹, 1130-1200)를 기념하는 ‘주자 학당’으로 교체되었다.

경관구 입구에 있던 거대 부처상들이 서화로 가려진 모습

린즈량이 해당 경관구에서 서예 전시를 여는 것도 금지됐다. 정부는 부처에 관한 붓글씨를 쓰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현지 신자는 당국이 이러는 이유가 사람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종교의 숨통을 조여 확산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한산’이라 쓰인 중국어 글자가 ‘연꽃 서원’으로 바뀐 모습

경관구의 어느 관리자에 따르면 2012년 5월에 아라한산 문화 산업 공원 개관식이 열릴 때는 샤먼시 정부 관리들이 참석하기까지 했다. “그때는 나라에서 건축 승인은 물론이고 관광지로 잘 발전시켜 보라고 격려도 해 줬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어 지었더니 이제 와서 조각상들을 다 부수라네요. 어디다 말해서 구제받을 길도 없습니다.” 그가 하소연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아라한상을 보러 왔다가 상들이 모두 가려진 모습을 보고는 왜 사람을 속였냐며 불평들을 하시는데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요.” 관리자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창때는 하루에 2만에서 3만 명의 관광객이 경관구를 찾았지만 이제는 그 수가 형편없이 줄었다고 한다.

‘지장사(地藏寺)’ 간판이 ‘공자 학당’으로 대체된 모습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갔습니다. 모두가 ‘주석 만만세’를 외쳐야 하고 종교를 믿는 것은 허락되지 않지요.” 어느 현지 불교 신자의 탄식이다. “만약 모두가 공산당을 믿는다면 정권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겁니다. 대중에게 일인 숭배를 강요했던 마오쩌둥 시대처럼요. 중국 공산당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 현명해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현명한 사람들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우둔할수록 통제하기는 쉬워지는 법이지요.”